KBS와 MBC는 방송이 아니란다. 조선일보가 아예 사설 제목으로 KBS와 MBC를 “방송 아닌 정치 세력”으로 규정하고 나섰다(5월4일).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정치 행위”를 한다고 단죄한 근거가 흥미롭다. 윤석열의 미국 방문에 “심각한 편파 방송을 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단다. 여러 단체를 늘어놓으며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를 앞세웠다. 사설은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마치 무슨 대표성이라도 있는 듯이 서술했지만 전혀 아니다. 지난 3월 창립할 때 공영방송 흔들기에 앞장선 박대출과 박성중을 비롯해 집
“석열아, 먼저 손 내밀고 더 많이 들어라.” 월간 신동아가 기사와 표지에 붙인 흥미로운 표제다. “서울법대 79학번 동기들이 바라본 ‘대통령 윤석열’ 1년” 부제를 달았다. 그 아래 표제도 눈에 띈다. “품성으론 최고의 대통령감”이다. 포탈 뉴스에 뜬 표제를 보고 기사를 읽었다. 고언을 했으리라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순진한 착각이었다. 변호사와 현직 법관인 동기들은 윤석열의 1년에 방향성은 맞지만 디테일이 아쉽다며 ‘한미동맹 공고화를 통한 국가안보 정상화’를 높이 평가했다. 서울법대 동기들이 모두 그리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100세 넘게 살며 글 쓰고 강연 다니면 축하할 일이다. 다만 그 글과 말이 편향되거나 사실과 다른 억지를 편다면 그 반대다. 김형석 명예교수가 대선 정국에서 낡은 색깔론을 펴며 선거에 개입할 때 우려를 전했다(‘101세 철학자’의 끝 모를 흑백논리, 21년 9월20일).충정으로 권해도 소용없기에 그 뒤 침묵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새 두 편을 기고한 칼럼은 충격적이다. 중앙일보 칼럼(20대 일본 유학서 깨달은 것 “왜 열심히 일해야 하나” 3월31일)과 동아일보 칼럼(과거의 연장으로는 국가적 후진성 극복 못 한다, 4월7일)이 그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살면서 누구나 그런 이를 마주쳤을 터다. 그런데 조금 알면 더 용감하다. 줄줄이 나타난 무리를 보라. 국힘당 의원 한무경은 국회에서 “한일합방은 누구의 잘못이냐하는, 예스냐 노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면서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한 것”이란다. 그는 문헌학 박사다. 그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정진석은 “제발 좀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잔다. 그는 기자 출신이다. 중앙일보 “두 원로의 기억 속 일제” 칼럼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박정희 비서실장 김정렴을 내세운 뒤 “역사를
윤석열과 기시다. 3월16일 도쿄에서 이야기 나누고 저녁밥 먹기로 했다. 윤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일본 전범기업에 내놓고 면죄부를 준 직후다. 경제를 위해서라고 부르대지만 민생도 아니거니와 납작 엎드린 자세다.더구나 삼일절에 사뭇 당당히 저지른 굴욕은 매국노 의식과 맞닿아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언죽번죽 주장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한국사의 정체성과 타율성이 뼈대인 식민사관에 뼛속까지 물든 윤똑똑이 아닌가. 윤석열이 기시다에
이재명 체포. 못해서 안달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검찰만이 아니다. 언론, 특히 신문방송 복합체들이 도드라진다.그런데 어떤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공안 수사1·2·3부가 죄다 수사에 나서고, 275차례나 압수수색해서 내놓은 영장청구서에는 정작 확실한 물증이 없다. 나는 지난 칼럼에서 검찰과 이재명의 주장이 전혀 다른 만큼 언론은 확인된 사실만 보도하고 그에 근거해 논평해야 옳다고 썼다(안철수가 적이라면 이재명은?). 그 뒤 나온 영장청구서를 보며 ‘이재명 죽이기’에 앞 다툰 언론들이 적어도 자중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신중은커녕 물증
조선일보 고위간부들의 ‘치열함’은 남다르다. 여기서 ‘고위간부들’ 표현은 의도적이다. 그 신문에 생각이 다른 기자가 있으리라 믿고 싶다. 더러는 조선일보 영향력을 과대평가한다고 눈 흘길 수 있다. 하지만 대선정국부터 지금까지 TV조선과 함께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이재명 의혹’을 부풀려왔다. 그를 좇아 유튜브와 자극적 댓글이 홍수처럼 쏟아졌다.오월의 민중을 ‘총을 든 난동자’로 기사 쓰고도 여태 진솔한 사과 없는 김대중에 이어 그 신문의 고문을 맡은 강천석은 “이재명 대표 ‘기소’와 ‘불기소’ 사이 중간은 없다” 칼럼(2월11일)에
나라꼴이 어찌될까. 보라. 자신이 영업사원이란다. 대한민국 대통령 말이다. 그것도 외국 대기업 회장들 앞에서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그는 호텔에 마련한 ‘글로벌 CEO와의 오찬’에서 “우리 글로벌 기업인 여러분을 한 번 뵙고 점심이라도 한 번 모시는 것이 대한민국 영업사원으로서 도의라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언론들은 크게 부각했다. 어느 언론은 “대통령 취임 후 ‘세일즈 외교’ ‘모든 순방은 경제 중심으로’ 등 정상외교를 통한 경제 산업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
한국 언론이 위기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다. 기자들과 김만배 사이에 억대의 돈이 오갔고 누군가는 명품 가방을 챙겼다. 언론다운 언론을 이룰 역사적 소명을 지닌 신문의 기자까지 들어있어 충격은 더 컸다. 김만배가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골프를 칠 때마다 100만 원 또는 수백만 원 봉투를 무시로 돌렸다는 말까지 ‘정치 검찰’은 솔솔 흘리고 있다.새삼 위기를 들먹이기도 남우세스럽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언론 위기를 진단해왔다. 문제는 언론개혁운동에 대해서는 물론 언론을 살리자는 호소까지 다름 아닌 언론이 뒤틀어온 데 있다. ‘한국 언론의 현
새해 첫날이다. 덕담이 미덕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위기’를 쓴다. 먹고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기득권층과 달리 우리 민중에 드리운 먹장구름이 너무 짙다. 새해이되 새해가 아니다. 민주, 민생, 안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세 부문 두루 위기가 무장 커지고 있다. 위기는 윤석열 정권의 시대적 역행이 불러왔다. 국정에 임하는 자기 생각이 있는지 의문마저 든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편향 보도를 일삼으면서도 마치 국민을 위한다는 듯이 늘 행세해온 ‘신문방송복합체’들이 그와 대통령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머슴. 더러 오해하지만 노비나 하인이 아니다. 부농이나 지주에 고용되어 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른다. 1980년대까지 전체 농업 노동 가운데 0.6%를 차지했다. 노동인들의 권리 의식이 보편화하면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참 흥미롭게도 머슴은 정가에서 부활했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 나서며 머슴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나타났다. 가장 강렬하게 머슴을 자임한 후보가 윤석열이다. 3월 7일 안산에서 “모든 선출직·임명직 공직자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머슴이 되는 게 민주주의”라며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배우 윤석열. 행여 발끈할 일이 아니다. 대선 후보시절 그가 자처한 말이다. 문화방송을 공격하듯 울뚝밸 치밀 일도 아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거나 비판할 때 목적은 타도가 아니다. 권력을 쥐면 누구나 지니게 마련인 오만함에 성찰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윤 대통령은 12월4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장관들과 대책회의를 열고 “6일 민노총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며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파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조직적으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겠다”며 ‘업무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대통령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이태원 참사로 온통 슬픔에 빠진 상황이었다. 경북 봉화의 아연 광산 갱도에서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소식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 명이 매몰되어 있을 때 대통령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겠다고 공언도 했다. 두 광부는 퇴원하면서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전국 곳곳의 어두운 지하에 들어가 있는 ‘산업전사’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간곡히 당부했다.그런데 보라. 11월16일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광산피해
“다시는 불행한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촛불 들지 않았던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나온 절규다. 지난 주말이다. 서울시청에서 숭례문까지 수만 명이 모였다. 촛불을 들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했다. 세월호 유족인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은 “책임자 처벌을 소홀히 해 온 역사”가 되풀이되는 참사의 원인이라고 호소했다.그럼에도 보라. 촛불을 바라보는 집권당 실세들은 도무지 성찰이 없다. 되레 살천스럽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권성동은 “타인의 죽음마저 정쟁의 자원으로 소비하는 운동업자”라고 비아냥대며 그들에게 “비극은 산업이고
아주 의아해한단다. “윤석열이 왜 저러지?” 그와 개인적으로 술을 적어도 50회 넘게 마신 사람들의 목소리다.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유인태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전한 그 말이 갈수록 실감난다. 딱히 그의 술친구가 아니었어도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한 검사 윤석열은 상식적이고 정의감도 있어 보인 것이 사실이다.그런데 보라. 미국에서 자기가 한 말을 놓고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기막힌 주장을 버젓이 했던 그는 국힘당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만나 돌연 “종북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은 “대한민국을 전복하
엄중 경고. 윤석열 정부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내린 조처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를 두고 문체부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했다며 엄포를 놓았다. 조금만 새겨보아도 생게망게하다. 정치로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청소년에게 정치적 풍자를 엄금하는 꼴 아닌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런 혐오나 증오의 정서가 퍼지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며 자신이 “심사위원이었다면 상을 줘서 응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무나 심사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 받은 학생에게 상처 주는 권력의
윤석열의 자유. 국제무대까지 선보였다. 유엔총회 11분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부르댔다. 같은 자리에서 칠레 대통령 가브리엘 보릭이 ‘사회 정의’를 강조하며 “부와 권력을 더 나은 방식으로 분배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제안한 연설과 참 대조적이다.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감응을 주었을까. 아니다. 자유를 외치는 그의 연설은 ‘신자유’ 이데올로기조차 외면 받는 세계적 흐름에서 ‘미국의 아바타’ 수준으로 읽혔을 터다. 기실 그의 낡은 자유론은 케케묵은 냉전에 찌든 철학 또는 정치학 교수 출신들이 그의 주변에 있기에 필연적이다. 자유
윤석열 정부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협치, 하나는 정쟁의 길이다. 나는 현 정부 출범부터 지금까지 칼럼에서 “작은 가능성이라도 살려보고 싶다”며 협치를 권해왔다.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은 정반대였다. 조선일보가 ‘전설’로 추앙하는 김대중은 두 차례 같은 제목의 칼럼(8월16일, 9월6일)에서 ‘윤 대통령 달라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첫 칼럼에서 “대장동 사건 등 사법 당국의 심판에 올라있는 불법들을 처리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윤대통령”은 “큰 실수를 하는 것”이고 “민주당 세력과의 ‘협치’운운하는 데 뜻이 있는 것이라면 그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삶을 접은 수원 세 모녀의 빈소를 스케치한 중앙일보(인터넷판)가 머리기사로 올린 큼직한 표제다(8월25일). 몇몇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기자와 편집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세 모녀를 두 번 죽이는 행태다. 실제로 수원의 세 모녀만이 아니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도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수원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수첩에 적바림을 남겼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며 경제 활동을 하던 오빠가 병사하고, 몇 달 뒤 아버지마저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한국 언론의 속살을 드러내주었다. 그가 대만을 방문한 2일 밤부터 지난 2주일 내내 조선일보와 그 아류들은 미국 하원의장 의전을 내세워 ‘윤석열 교육’ 또는 길들이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가장 먼저 “펠로시 안 만나는 윤, 미·중에 잘못된 신호 주는 건 아닌지” 제목의 4일자 사설에서 윤 정부가 “문재인 정권처럼 굴종적 자세”를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열흘째 ‘펠로시 소홀’을 들먹였다. 전 국가정보원장 박지원까지 인용해 “김대중 대통령이었으면 만났을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D